정 찬 호 재인촌 우금지 대표(연출가)

1. 지워진 이름 정여립정여립은 조선 중기의 사상가이다. 그를 장군이라 부르기보다는 사상가로 선생이라 부르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 선조가 왕위에 있던 당시 선생은 임금 앞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할 정도로 심기가 아주 강건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선생은 처음 서인에 있다가 동인으로 옮긴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을 하게 된다. 낙향을 하여 임진년에 있을 변에 대비하여 10만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이이의 양병설에 동감하여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모아 대동계를 조직, 무술을 연마토록 한다. 그리하여 1587년 왜선 18척이 손죽도로 침범한 정해왜변이 발발하였을 때, 전주부윤 남언경의 요청으로 대동계의 무사들을 동원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여립을 못마땅하게 여긴 서인들은 이 대동계가 불측한 일을 위해 조직되었다 하여 모반 음모로까지 연결지어버리지만, 정해 왜변에서의 대동계의 활동을 보면 모반을 위한 사병집단이 아닌 호국충절의 집단이라고 봐야 함이 옳을 듯싶다. 어쨌든 조선정부는 서인의 도살자 송강 정철을 위관으로 삼아 1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기축옥사로 결말을 맺는다. 이때가 광란의 시기는 아니었나 싶다. 마치 중세의 마녀 사냥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여립과 일면식도 없는 동인계 선비마저 무리하게 엮어 넣어 주살하였다. 눈이 아파 눈물을 보여도 정여립 때문에 운다고 하여 처형하였고, 임지를 옮기면서 정든 여인이 그리워 보인 눈물도 정여립 때문이라 하여 능지처참된 관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대한 문제가 남았으니, 그것은 곧 전라도에 대한 처우 문제였다. 단 한명의 패륜아나 음란한 행동을 한 여자만 나와도 그 고을이 강등되는 시대에 전라도의 중심지인 전주부에서 역적이 나왔으니 전라도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주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본향임에도 불구하고, 반역향으로 규정되어 점차 전라도 인사들의 관계 진출이 어렵게 되었으며 설사 관직에 나갔다 하더라도 요직의 길은 거의 두절되었다. 정여립 선생은 체계적으로 지워졌다. 진안에서의 선생의 행적이 모조리 사라졌고, 선생의 사상 또한 사라져버렸다. 2. 지워진 역사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중국의 고구려사 문제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하루 이틀 전의 일이 아니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북한의 간도 문제 등이다. 역사적인 면에서 보면 조선의 역사왜곡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계관과 역사관이 오로지 중국의 명나라에 존속되어 있었다. 명나라만이 세계였고, 명나라만이 역사였다.그러한 우리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조선사학회를 통해서였다. 일제의 조선사학회는 우리의 역사에 실증사학이라는 잣대를 들이 밀었고, 아직도 우리 역사가들은 실증사학이라는 잣대를 통해서만, 즉 기록이 있는지 또 어떠한 물증이 있는지만 따지는, 그래서 기록에 없고 물증이 없으면 역사로 인정을 하지 않다. 일례로 삼국시대를 들 수 있다. 전라도와 충청도 땅에서 발굴된 유물은 무조건 백제의 것이고, 경상도와 강원도 쪽에서 발굴된 유물은 신라의 것이다. 한강 이북에서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고구려의 것이라는 등식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삼국시대가 이 땅에 있었다고 누가 말하던가? 이 좁은 땅 한반도에서 말을 달리며 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이 노력했던가?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 땅에 없었다. 중국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일제는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한반도에 삼국을 몰아넣었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실증사학에 얽매인 사학자들은 아직도 삼국을 이 땅에서만 찾고 있다. 또 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스스로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르느냐? 하고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한다. 왜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를까? 단군 왕검이 조선을 열기 이전에 거발한 한웅천왕이 신시 배달국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안파견 한인 천제가 한국을 열었고, 그 한국이 3300여년 동안 이어졌다. 우리 민족의 고유 신앙인 삼신신앙이 있다. 즉 천지인(天地人)을 말함인데 천(天)의 위치에 안파견 한인천제, 지(地 )의 위치에 거발한 한웅천왕, 인(人)의 위치에 단군왕검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가 실증사학이라는 잣대에 밀려 사라져버리고, 이러다 보니 중국이 한반도를 벗어난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인양 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문명을 무너뜨린 고구려-훈족의 대이동-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킴으로서 중국은 세계역사를 변화시킨, 세계역사의 뿌리를 쥐고 흔든 나라가 되는 것이다. 자기네 것도 아니면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중국과, 대륙을 경작하였다고 우기는 일본 사이에 끼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우리의 대한민국은 되지 말자. 우리 민족이 중국-한족의 조상이고 일본의 천황 또한 우리 민족의 한 줄기임을 우리의 교과서에 실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세계를 경영했던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하자. 3. 지워진 진안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런 상태로 너무 오래 지속이 되다보니 이제는 찾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일도 아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가진 진안이 해야 할 일이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이나 앞서 공화론을 부르짖었던,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정여립 선생의 한이 파묻혀 있는, 역사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진안군이 앞장서서 잃어버린 선생의 사상을 되찾고,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되찾기를 바란다. 상전면 죽도에 정여립 선생이 기거했다는 서실도 다시 만들어 매달 15일마다 했다는 향사회-일종의 활쏘기 대회-도 열고, 선생의 사상도 다시 정립하고,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진안의 모습도 다시 일구고, 조선 최대의 사화인 기축옥사를 재조명하여 당시의 형법과, 처형도구들도 진열하여 조선의 참모습을 후손들이 찾아 볼 수 있도록 하며, 조선 상고사 학회의 많은 학자들을 모셔다 심포지움을 열어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도 급선무일 것이다. 지워진 역사를 되찾는 것이 후손들을 위하여 진안군이 해야 할 몫인 것이다. 대한민국 :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대(大) 한민국이 되고, 한글 :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의 글과 말 즉 한글을 쓸 것이며, 무궁화 :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무궁하게 발전할 것이다. 전 세계가 대 한민국이 되어 하나의 글과 말을 쓰면서 무궁한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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