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마이산
  • 진안일보 편집부
  • 승인 2004.04.2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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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년전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곳이 있다. 마이산! 말귀를 닮았다는 쉬운 이야기로만 풀어내어 지금껏 그 속에 담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자연의 신비와 전설과, 역사를 쉽게 쉽게 간화해 버린 그런곳, 마이산이다. 세계 유일의 부부봉인 마이산은 전주에서 동쪽으로 약 32Km 지점, 진안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지점, 노령산맥의 경계에서 진안고원의 중심에 위치한다. 산 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m의 암마이봉과 667m의 숫마이봉으로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약 1억년전에 마이산은 선상지였다. 이 곳이 4천만여년을 지내며 지각변동이 있었고 마침내 주변보다 6백여미터 이상 솟아 산이라 불리워진 곳이다. 전주에서 26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임실로 빠지는 49번 도로의 이정표 길목에서 문득 ``나타나는`` 경이의 산이 바로 마이산이다. 그렇다. 경이의 산이라 불리워지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산이 바로 마이산이다. 전설이, 역사가 , 그리고 보는 이의 느낌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달리 보여지고 느껴지는 곳이 마이산이다. 세계 최대의 벌집모양의 지형이 바로 마이산 봉우리를 구성하고 있다. 바로 지정학적이 특색인 타포니지형이다. 세계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덩어리이다. 학문적으로는 역암(자갈) 덩어리라 하는데, 역암은 물에 실려온 운반 물질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퇴적암의 하나이며 마이산을 이루는 역암의 두께는 무려 1천 5백m에 이르러 학계에서는 ``마이산 역암층``으로 불리워 질 정도이다. 여러번의 지각변동으로 진안 분지가 형성 되었고 그 주변에 생긴 마이산(673m)의 우뚝 솟음이 전설을 품고 있고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다. 마이산은 지리산, 적상산, 월출산과 함께 호남에서는 보기드문 산신제터로 봄, 가을에 국태민안을 비는 산신제를 모셨던 곳이다. 특히 태조가 조선개국의 천명을 얻은 산으로 태종 13년 10월 12일에 왕께서 남행 친림 하시어 산신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있다. 그 후 , 진안군민의 날이 매년 10월 11일 오후에 1984년 이후로 매년, 마이산 제단에서 산신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제단 또한 조선 왕조실록에 근거하여 은수사터 앞 옛 산 제터에 축조 복원하였다. 지금은 국태민안뿐 아니라 풍년 농사를 감사하고 군민 가호를 축원하는 진안군의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자연이 만든 신비의 극치가 마이산이라면 인간이 만든 신비의 절정은 자연석으로 만든 천지탑과 석탑들이다. 암마이봉 남쪽 절벽 아래 위치한 탑군들은 음양오행의 조화에 맞춰 팔진도법에 의해 배열 축조한 것이라 한다.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태산처럼 위엄 있게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주 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줄줄이 배열되어 있다. 천지탑은 곧 부부탑이기도 하다. 이곳의 탑 역시, 음양사상 위에 축조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음양의 산에 음양의 탑이 축조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음양의 산에 음양의 탑이 축조 되었음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신비가 숨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속금의 사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나머지 크고 작은 80여기의 탑들도 지형과 위치에 따라 제각기 모양을 달리하여 정교하게 축조되어 그 조화미는 실로 신비로운 바가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탑들의 조탑 방식이 우리 나라에서 는 보기 드문, 오히려 아시아 북방 사막의 유목 민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탑 방식에 가깝다는 점이다. 태풍이 불어도 흔들릴지언정 돌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이 마이산 석탑의 신비는 과연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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