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구자인 진안군청 마을만들기 지원팀장

아야정은 일본에서 흔히 산림보전과 유기농업, 귀농귀촌의 선진지로 소개된다. 인구 7천5백명의 작지만 강한 자치단체다.

한때 '야반도주의 마을'이라 불리던 것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풀뿌리 기초에는 주민자치 시스템이 있다. 또 모두가 자치단체 통합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독자노선을 고집하며 합병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마을만들기 활동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간 일본 큐슈지방 미야자키현의 아야정을 다녀왔다. 약 55시간의 체재기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강연과 견학, 토론 등으로 꽉 찬 연수일정을 보냈다.

좋은 연수였다는 것이 군수님과 의장님을 비롯한 총 29명 방문단 모두의 일관된 평가였다. 간단하나마 인상 깊었던 주민자치와 평생학습 시스템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치공민관이 마을만들기의 출발점
아야정은 1965년에 당시까지 행정의 말단기구 역할을 하던 구장(區長, 우리의 이장) 제도를 폐지하고 자치공민관장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1966년에 자치단체장에 취임하여 24년간 근무하며 현재의 아야정을 만들었던 고다 미노루 전(前)정장이 가장 중시하였던 마을만들기의 원점이었다. 특히 모두가 산림벌채와 인공조림을 주장하던 1960년대 중반에 '목숨을 걸고' 현재의 조엽수림을 지켰던 원동력도 바로 자치공민관 시스템에 있었다.

그는 자치공민관의 주민좌담회를 통해 산림보전과 유기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주민들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자치공민관 제도는 마을 문제는 주민자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을만들기 원칙의 재확인이었고 이를 통해 행정과 마을 사이의 상호관계는 명확해졌다.

물론 행정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던 구장이 주민자치의 입장에서 마을 발전과 주민 복지향상에 전념하는 역할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가 있었고, 정착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한다.
 
말 그대로 주민자치의 운영구조
자치공민관은 주민들의 자치능력과 연대감을 높이면서 마을 사업과 건강 증진, 청소년 육성, 각종 단체 지원, 주민 친목 등으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를 실천하는 풀뿌리 기초 단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모든 사업과 활동은 주민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자주적으로 결정되고, 여기에 필요한 경비는 주민들 스스로 부담하고, 물론 유지관리도 주민들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자치공민관은 총 22개로 마을 규모에 따라 12호에서 265호까지 다양한데, 평균 104호로 우리의 법정리 1개 정도다. 당연히 예산 규모도 다양하여 평균 2,574만엔(약 3억원)이다. 가구당 월회비로 8백엔 정도가 부과되고 있는데(일부 경감 내지 면제), 놀라운 것은 이 회비가 100% 완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귀농귀촌 세대가 늘면서 자치공민관에 참가하지 않는 경우가 일부 나타나지만 체납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 소요예산 중에서 행정의 지원을 통해 충원되는 것은 30%에 그치고 있다. 상근자는 없고, 관장은 비상근 명예직으로 연간 25만엔 정도의 활동비를 지원받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풀뿌리 주민자치 시스템이 있었기에 행정과 대등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평생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

평생학습 프로그램도 대부분 자치공민관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1991년에 실시된 주민 설문조사에서 "보다 가까운 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평생학습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리고 1993년에는 우리의 평생학습지도자 제도와 유사한 '평생학습추진원'이 자치공민관마다 배치되었다. 또 임원 연수, 좌담회, 학습동아리 활동 등도 병행되어 2000년경에 현재의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2007년의 학습강좌 개설 실적은 22개 자치공민관에서 총 137강좌 연인원 7,194명이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좌 종류는 전통에서 현대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소인수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욕구를 반영하여 매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중앙의 공민관에서는 별도 강좌가 마련되어 모두 26강좌에 467회 개최, 연인원 3,964명이 참석하고 있다. 전체 주민중에서 약 70%가 하나 이상의 강좌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꼼꼼하게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상품(특히 공예품) 개발이 이루어지고 지역발전에 대한 토론도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연대감과 애향심도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은 자치공민관별로 매년 개최되는 자주적인 문화제(마을축제)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아야정
이번 방문 기간 중에 이루어진 자치공민관장들과의 좌담회에서는 아야정의 주민자치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상근 명예직에 역할은 많지만 그들 얼굴과 목소리에는 지역발전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과 향토애가 넘쳐났다. 유기농업이 활성화되고 생협과의 교류활동 등을 통해 개방된 지역분위기가 형성된 탓인지 자치공민관장에는 귀농귀촌한 경우도 40대 젊은이도 또 여자도 있었다.

이번 방문이 유기농업 축제와 문화제 기간에 맞추어져 2개 자치공민관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평소에 갈고 닦았던 평생학습 성과와 유기 농산물이 전시되고, 부녀회가 준비한 정성어린 음식도 대접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민들의 밝은 미소를 접하고 '안녕하세요'라고 건네는 인사말에 너무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

역시 40년 간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마을만들기의 성과는 이들 주민들 마음과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연수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했던 모쿠도자치공민관에서는 헤어질 때의 아쉬움을 만세삼창으로 대신해주었다. 지금까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우리 스스로 불렀던 일본이 이제는 우리 진안군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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