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정(綾町) 견문록 2
최태영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사무국장

나는 일본말을 좀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이번 연수에 공식 통역이라는 역할을 띠고 참가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아야정으로 가는 길에는 마에다(前田稔)정장이 함께 탄 관용차에 군수를 모시고 나도 통역으로 동승하였는데, 정장은 그날따라 비가 악수같이 퍼붓고 있어 시야가 좋지 않은 가운데도 여러 가지 풍물을 안내하느라 열심이다.

목적지인 아야정은 공항이 있는 미야자끼(宮崎)시(市)에 인접해 있다. 미야자끼시를 통과하는데 무언가 다른 인상이 들었다. 이 도시가 주는 왠지 모를 차분함과 평안함.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장의 말 - "경관(景觀)조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시 전체의 균형을 미리 염두에 두고 건물의 높이나 색깔 따위까지 모두 자연경관을 해(害)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인구 40만의 중규모 도시에서도 무분별한 비대(肥大)나 난개발(亂開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정착되어 있는데,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길을 넓히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을 발전이라고 본다면 확실히 우리 진안은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환경이 새삼스럽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최근의 생태보전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앞서 있는 셈이다. 교통수요도 별로 없는 마을 뒤 산길을 넓혀 포장하고, 타작마당으로 쓰던 정겨운 마을회관 앞을 아스팔트로 덮어 주차장으로 바꾸고...하는 일들을 이쯤에서 잠시 접고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지 차분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논에 아직도 초록색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기온이 높은 곳이라지만 겨울은 겨울이니만큼 그 초록색의 연유가 궁금했다. 벼 수확을 할 때가 지나지 않았습니까? 라고 의문을 표하자, 일단 추수를 끝내고 그냥 두면 그루터기에서 다시금 줄기가 돋아 올라와 무릎 높이까지는 자란다고 하며 그렇게 다시 나는 벼는 가축의 사료로 쓴다고 한다. 이른 바 이모작(二毛作)이랄 수 있는데, 기온과 습도가 높은 기후의 덕을 보는 셈이다.

연도(沿道)에는 대규모의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다. 그 안에서 오이와 휴우가나쯔(日向夏-미야자끼 일대에서 나는 감귤류), 그리고 파프리카가 재배되고 있는데 오이와 파프리카는 일본 전체 생산량의 35퍼센트 정도가 이곳에서 출하되고 있다 한다. 파프리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주요 농산물의 하나다.

"한국에서 수입되는 양도 상당히 많을텐데요?" 아야정장은 "그렇다면 (한국산 파프리카는) 우리 큐우슈우 지방에는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유는 지산지소(地産地消-로컬푸드)에 관한 조례 때문이란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하자. 멀리 보내는 농산물에는 필연적으로 방부제를 쓸 수 밖에 없고 냉장보관 등에 에너지를 더 써야 하게 되어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지산지소 운동이다. 그것이 조례로까지 승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이 지방의 정책이 부러웠다. 우리 고장에서도 지역의 유기농산물로 학교급식부터 시작하자는 운동이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인 만큼, 언젠가 더 훌륭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야자끼시와 아야정이 있는 큐우슈우지방은 제주도보다 위도(緯度)가 더 낮은 아열대에 가깝다. 그래서 거리의 가로수도 우리 진안에서는 보기 힘든 야자수와 같은 열대수목들로 조성되어 있어 이국적이다.
그러나 기후의 차이로 흉내내기 어려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또는 제도로써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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