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특집 인터뷰
34세에 진안으로 피난온 황해도 사나이 … 이석주 할아버지
"남북통일되면 제일 먼저 북한에 가고 싶다"

▲ 이석주 할아버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 꼭 60년이 됐다. 진안읍 물곡리에 살고 있는 이석주(94) 할아버지도 60년의 세월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석주 할아버지는 서른네 살의 나이로 한국전쟁을 겪었다. 황해도에서 서울로 그리고 경남 마산까지 피난길을 따라 걸었다.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간. 가족들에게 온다는 소리도 못하고 왔어.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왔지."
이석주 할아버지는 황해도에서 경남 마산까지 스무아흐레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산에서 잠시 잠깐 머물다, 경남 사천에서 6개월을 보냈다. 이처럼 황해도에서 남한으로 피난오면서 제대로 먹지도 잠자지도 못했단다.

"황해도에서 개성을 거쳐 피난했지. 개성에 도착하니 집들이 비어 있었지. 피난간 사람들이 두고간 것을 찾아 먹곤 했어.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 그때 생각하면 기막히지. 그러면서 하루 20리, 30리를 걸었어."
그러나 목적지를 모르면서 걸었고, 굶주림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다 제대로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단다. 그곳은 경남 밀양이다.

"잠은 헛청에서 자고,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신히 끼니를 때웠지. 그러던 중 경남 밀양에서 대접을 받았지. 집주인이 시장에 가 생선이며 장봐다 대접을 해주었어. 그리고 이튿날 가면서 먹으라고 밤새도록 김밥을 싸주었지. 그 많은 사람 밥해 먹이느라 욕봤지. 이름 석 자 적어 찾아간다고 마음먹고 여태껏 못 갔어."

이석주 할아버지는 심지어 사랑방에 매달아놓은 메주도 먹곤 했단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많은 사람을 굶주리게 했다.
"피난민이 지나간 곳은 여간 욕보지 않았지. 그런 생각을 하면 시방은…."
말끝을 흐리는 이석주 할아버지를 보면서 피난길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황해도에서 진안으로
이러한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이 진안읍 물곡리다. 서른다섯에 도착한 물곡리에서 지금의 양봉례(82) 할머니도 만났다.
"음력 3월에 물곡리에 왔지. 그때 내 나이가 서른다섯이었어. 아내도 이때 만났지. 그러면서 아들 4형제를 낳았어. 부지런히 일해야 했지."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이석주 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이다. 그리고 진안 이곳저곳에 다니며 집을 지어 주고, 살림살이를 꾸렸다.
"물곡리도 그때보다 많이 달라졌어. 이곳에 와서 농사일을 처음 배웠어. 농사일도 하면서 이북에서 배운 목수 일을 했지. 그러면서 농토도 늘리곤 했어."

이처럼 살면서도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이산가족 찾기 신청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고향을 떠나 이 땅에 와서 60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잠이 안 올때면 고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살아 생전에 고향땅을 밟을 날이 돌아 올 수 있을 런지....."
이석주 할아버지는 아직도 남북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가는 꿈을 잊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