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초등학교 아이들과 마이숲사랑의 행복한 나들이

토요일 아침, 운장산 계곡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네모난 교실에서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칠판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노란색 학교버스에 올라 운장산을 찾았다.
운장산에서 아이들을 맞은 것은 학교 선생님들이 아닌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다. 숲이 좋아 숲을 공부한 숲해설가들은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했다. 그 옛날 할머니 무르팍에 머리 대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먼 듯하면서도 친숙한 숲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꿈을 키웠다.
 

▲ 최현숙 숲해설가가 조림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굴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붉나무 열매는 꽃소금?
“골참나무라 부르다 굴참나무로 바뀌었어요. 여기를 보세요. 껍질이 많이 벗겨져 있죠. 사람들이 그랬을 거예요. 굴참나무 껍질은 코르크여서 병마개로도 사용했거든요. 이렇게 많이 벗기면 나무도 춥겠죠? 벌레들도 더 잘 달려들 거고요.”
햇살을 받으며 그냥 그렇게 서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며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아이들도 나무가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마주 잡으며 환하게 웃는다. 최현숙 숲해설가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해설가의 손끝을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없이 진지하다. 그래도 참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도토리’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 있는 진안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주차장 옆, 누군가 현수막을 걸어 놓느라 사용한 끈을 거두지 않았는지 나무줄기를 옥죄고 있었다. 부피생장을 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나무의 모습은 아이들의 눈에도 안쓰럽나 보다. 최현숙 해설가의 부탁에 키가 큰 5학년 성배가 성큼 올라가 줄을 풀어놓는다.
“저 나무는 붉나무예요. 운장산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신맛과 짠맛이 나지요. 소금은 바다에서만 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소금이 귀한 산골에서는 붉나무 열매를 두부간수로 사용하기도 했대요.”

최현숙 해설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 사이에서 “그럼 꽃소금이에요?”하며 받아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진지했다. 처음, 해설가들과 아이들 사이에 놓여 있던 거리가 빠르게 좁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내용으로 만났다면 그 사이가 줄어들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다. 숲이었기에. 그곳에서 나무와 꽃을 이야기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대
막 노각나무와 산딸나무와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등에 대한 설명을 모두들은 저학년 조는 박선진 숲해설가와 함께 둥그렇게 모였다. 그곳에선 즉석 퀴즈대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배운 나무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한 복습이었다.
박선진 해설가는 꽃눈이 달린 층층나무 가지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 올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나무일까요?”
“잠자리 고추 닮았어요~.”

말한 녀석도 주위에서 듣는 아이들도 해설을 돕던 숲해설가들도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하긴 박선진 해설가 손끝에 잡힌 빨간색 가지 끝을 보니 고추잠자리의 배부분과 무척 흡사하다. 숲은 그렇게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켜나가고 있었다.
나무이름을 맞힌 아이들에겐 나무이름이 적힌 이름표와 사탕 한 개를 상으로 주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아이들은 문제출제자 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통제가 필요한 시간이다.

그렇게 노박나무와 굴참나무 등의 일부를 가지고 나무 이름을 맞힌 아이들은 목에 이름표를 걸고 큰 소리로 나무이름을 외쳤다.
두 개조로 나눠 진행한 이날 수업엔 탁 트인 하늘과 졸졸 흐르는 시냇물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는 나무들이 함께했다. ‘숲이 가장 훌륭한 학교’라는 흔하디 흔해 이젠 더는 감동적일 것도 없는 그 사실을 충분히 확인해 주고도 남는 현장이었다. 

▲ 회원들은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사진 왼쪽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권태웅, 정장숙, 장미옥, 박화숙, 최현숙, 최민의(진안초6), 박선진, 이선경씨. 민의는 마이숲사랑의 ‘숲 속 학교’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숲을 사랑하는 학생이다.
◆ 숲해설가들의 모임 ‘마이숲사랑’
아이들 곁에서 교육현장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조림초등학교 권황국 교장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생활이나 주변이 도시화되어 가면서 자연을 잘 몰라요. 이런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이 숲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요. 운장산이라는 좋은 산이 옆에 있으니까 더 잘 됐죠.”
조림초등학교는 운장산자연휴양림과 자매결연을 맺고 방과후 활동을 숲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17일 오전 10시부터 아이들과 함께 운장산 숲 속 학교에서 즐거운 프로그램을 진행한 숲해설가들은 진안의 ‘마이숲사랑’ 회원들이었다.
진안군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숲 해설가 양성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교육생들의 모임이다. 2005년부터 진행한 숲 해설가 양성교육은 평생교육의 취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으며 숲 안내자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강사는 전주지방환경청 생태강사인 최현숙씨가 맡고 있다. 회원들은 수요일과 토요일, 자체교육을 하고 학교가 쉬는 둘째 넷째 토요일에는 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 속 학교’를 열고 있다. 

◆ 숲이 주는 커다란 의미
운장산에서 조림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숲 안내를 마친 후 덩그러니 남은 숲 해설가들은 한 뼘은 더 넓어진 공간 속에서도 휑하지 않았다. 시간을 잘못 알아 늦게 도착한 권대웅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엔 행복이 충만해 보인다. 즐거움은 전염되는 것이 맞는가 보다.
“시골 출신인데도 숲을 몰랐어요. 집 담 옆에서 자라고 있는 풀 이름 하나도 모르는 거예요. 문맹처럼 생태맹이 되어버린 거죠. 마이산에 근무할 때 우연히 숲 교육을 나온 ‘마이숲사랑’ 회원들을 보았어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함께하게 되었죠.”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진안이 고향인 남자를 만나 그의 고향에 내려온 이선경씨의 얘기다. 지금은 직장을 서울로 옮겨 주말에만 내려올 수 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 토요일 프로그램에라도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대단한 의지다. 보조강사로 이번 교육에 참여했던 이선경씨의 마이숲사랑 이름은 은난초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궁금했던 것을 서로에게 물으며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풀 이름, 나무 이름 하나를 알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봄이 되면 새싹이 올라오고 그 새싹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아이들을 보게 되었어요. 숲이 주는 의미를 아는 것이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이숲사랑 이름으로 질경이를 쓰는 장미옥씨는 숲을 포함한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대해서 얘기했다. 숲 안내가 단순히 숲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의 이름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은가 보다.
회원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카페(http://cafe.daum.net/namu518)를 개설해 두고 서로 일상을 나누며 공부도 하고 있다. 카페에 들어가면 숲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깨달음을 얻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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