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저곳이 온통 꽃밭이다. 노란 개나리, 새색시 붉게 물든 볼 마냥 피어오른 연분홍 진달래, 산들바람에도 나풀나풀 춤추며 떨어지는 벚꽃 잎들. 진안은 지금 사방이 꽃들의 축제기간이다. 봄이면 이처럼 아름다운 꽃과 봄바람 등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에,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그 계절이 주는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곳, 이곳 진안. 황진명(60세), 박은희(59
언제 매서운 한파에 몸을 움츠렸나싶게 날씨가 따뜻하게 변하고 있다.그렇게 변한 계절에 순응하며 사람들은 부지런히 논과 밭 등 일터로 향한다.3월의 농촌, 지금 농촌은 봄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윤재득(52, 성수면 용포리 포동) 씨. 그도 올 한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봄 농사에 들어갔다. ◆ 삶이 행복하다6년. 윤재득 씨가 귀농생활에 접어든 지도 그리 됐
서울에서 주천면 무릉리로 귀농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언론사 총무부 총책임자로 있었다. 언론사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꾸렸던 사람이다.그런 그가 귀농해 우리 군에서 했던 교육이란 교육은 모두 받았다. 숲 해설 교육, 약초 효소 교육, 리더 교육, 친환경대학 교육 등 누구보다 열정을 같고 교육을 받았다.그랬던 그가 마을의 이장이 되었다. 그리고 면지역의 이장협의
어둑해질 무렵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 대부분의 상점도 문을 닫을 시간이면 인적도 없는 곳에 주변까지 환하게 밝히는 곳은 진안읍내의 밤풍경을 생경하게 만든다. 이곳 편의점에는 시급 3500원의 알바생이 홀로 긴 새벽까지 매장을 지킨다. 터미널 세븐일레븐. 그곳에 우리지역 귀농인이 있다. 정천면 마조마을 조성복(47)씨. 농사짓는 사람이 웬 편의점 알바.
아는 사람도 많고 활동도 왕성하다. 진안중학교 청소년 방과후학교 교사로 활동중이며 취미로 탁구동호회에서 진안과 열심히 어울리는 중이다. 지난 5일 강수은(45) 씨를 만났다. 포항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다고. "포항이면 바닷가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산골이었어요. 내륙쪽으로 바다와 떨어져서 생선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죠. 오히려 밥상에 산나
매서운 눈매에 뿔테안경이 범접하기 힘든 인상이다. 그와 몇 분만 대화하면 그런 인상은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마을만들기 지구협의회 강신욱(49) 사무국장. 진안에 들어온 지 일 년 만에 마을만들기 관계자등 지역사람들과 급속도로 관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7년을 살아온 기자가 여태껏 친밀함을 더하지 못했던 인사들과의 관계를 보면 '아, 나는 헛살았구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 문을 열고 기자를 맞아 눈을 맞추고 난 이후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 부위다. "왜, 빡빡 깎으셨어요?" "편하잖아요. 혼자 깎아요. 씻기도 편하고.허허." 염색한 개량한복에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은 첫 만남을 편안한 느낌이었다. 태풍 볼라벤이 군산 옆을 지나 황해도 어딘가로 상륙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였
구두와 군화를 화분화 한 작품이 입구에 놓여 있고, 두꺼비 입에서 생명이 자라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없을 것이다. 마당에는 무수한 작품들이 자리를 잡고, 건물 뒤편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고물 철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철재들은 언젠가는 작품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바로 이웅휘 작가의 집이다. 이 작가는 2005년 용담면 와룡마을에 자리를 잡고, 정착
농사꾼으로서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모임의 수장으로서 그를 만나보고자 했다. 그가 "할 일이 꽉차있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아침 일찍 만나기를 주문했다. 지난 24일 뿌리협회 진안읍지회장인 양기본(53)씨의 집을 찾았다. 뿌리협회를 알리기 위한 인터뷰였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집 마당 한쪽에 고구마순을 자르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
"산삼이나 한 번 봐." "그럴까요. 먹지는 못해도 보기만 해서 기운이나 얻게" 정천면 우체국에 들렀다가 듣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날(지난 2일) 김진주 씨를 찾았다. 어둠이 찾아든 정천 계곡 도로 한쪽에 자리한 그의 집. 막 저녁을 마치고 기자를 맞았다. 찾아온 제일의 목적을 이미 안다는 듯. 상위에 신문지를 펴기
귀농인보다 귀향인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최윤식(55) 씨. 그는 2000년 5월 20일 진안고향에 왔다. 이때 나이가 마흔 셋이었다. 아버지 최일성 씨 일을 돕기 위해서다. 아니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아버지 뒤를 이어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막사가 돌풍으로 날라 간적도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양계장을
09년 9월 진안으로 귀촌한 사람이 있다. 그는 진안으로 오기 전에 서울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면서 10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서울에서 선배와 함께 신성학원과 청솔학원을 성장시켰다. 그 기간이 20년이다. "대한민국에서 머리 좋다는 친구들은 원 없이 가르쳐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안 좋아 진 것 같아요." 끝없
고향으로 돌아온 지 7년. 고향의 품은 따뜻했다. 정착하기도 쉬웠고, 농사를 짓는데 도움받기도 수월했다. 자동차 부품 자재부서에서 근무를 했던 김진철(44) 씨. 지금은 농부가 되어 있었다. 김씨가 고향으로 귀향한 것은 아버지 김성규 씨로 인해서다. 교통사고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자리에 놓고, 고향으로 온 김진철 씨는
작년 3월 25일 날 이사를 왔으니 만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봄이 찾아오면 농사꾼은 바빠진다.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거나 개간한 땅에 거름을 넣는 등의 일만으로도 하루가 꼬박 간다. 진안읍 구룡리 석곡마을 김영배(54)씨는 5천 평의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 철쭉, 화살나무, 들꿩나무, 참빗나무, 명자나무 등의 조경나무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quo
소개로 찾아간 골짜기. 이렇게 깊은 곳에 마을이 있을까. 부귀면 거석리. 황금리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왼쪽으로 꺾어 굽이굽이 올라가니 축사를 지나 드물게 집, 암자가 보이다가 멋들어진 목조주택 단지가 보인다. 단지는 아니다. 목조주택 2채와 부속건물 2동.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는 길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다. 본채로 보이는 살림동에서 아주머니
“빰빠바바바바바 빠아 빠밤밤. ” 이 음악만 흘러나오면 30대 이상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미드'의 주인공. 맥가이버는 스위스 칼이라고 불리는 다용도 주머니칼만 있으면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낸다. 기계, 화학, 물리, 지질학 등에 완전히 능통한 지라 위급상황을 탈출할 때 주변 흔한 물건들을 섞어서 폭탄을 만든다든지 소형로켓트를 만드
그녀의 시골살이는 꽤 길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에도 시골생활은 계속됐다. 그래서 진안에서의 삶이 낯설지만은 않다. "진안으로 오기 전 논산에서 12년 정도 살았지만 그곳도 시골이었어요. 저는 농사짓고 남편은 회사로 출퇴근을 했죠." 2년 전 용담면 방화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길희자(40) 씨. 그녀는 도시생활보다 시골생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사람은 언젠가 고향으로 향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본능을 수구초심이라 한다. 수구초심의 고사성어처럼 사람도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고향의 품이 그립고, 고향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귀향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윤상목 씨다. 그는 아내 최영식 씨와 함께 어머님이 생전에 머문
고향, 진안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스스로 "내가 필요로 하게 하자."라며 백운면 반송리 두원마을에 살고 있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고향에서 삶을 산지 1년 4개월째 되었다.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양연철(55) 씨. 비록 지금은 형의 땅에 무허가 하우스에서 살고 있지
며칠째 폭염의 연속이다. 잠깐 밖에 나가도 어느새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린다. 땀으로 샤워한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 4일 최현석, 이선희 부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 마당에 들어선 순간, 신이 난 아이들이 먼저 반겨준다. 마당 가운데 넓은 풀장을 만들어 놓고 내리쬐는 태양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물놀이가 마냥 재미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