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한 돈 씨 상전면 월포리 원월포마을 출신 상전초등학교 제35회 동창회장 『꼬까꾸네』(꽃가꾸는사람들)대표 재경상전면향우회 총무 "나를 아끼고 가족을 사랑하자./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과 친구에게 친절하자./내 조국을 잊지 말고/ 작은 사랑도 베풀 줄 아는 미더운 사람이 되자." 이 지극히 교과서적인 글귀는 교장선생님의 졸업식 훈화(訓話)의
송윤기씨 주천면대불리장등마을 출신 (주)드림·디포 대치점 대표 재경주천면민회운영위원10년 역임 재경주천면민회 총무 고향은 그것이 비록 박토였다 하드래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용기의 원천 이였고 우리 긍지의 근원 이였다. 고향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추억의 의미였고 대상 이였다. 잠깐 스쳐간 고
전근표씨 진안읍 군하리 출신 명보쇼핑 대표이사 하림 부화사업 본부장 익산향우회 회장 진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밥을 굶기가 다반사였고 찐 감자와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것도 모자라 주조장의 술 찌꺼기로 배를 채웠다. 전근표(60)씨가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것은 그렇게 배고픈
성 만 호 씨 동향면 대량리 창촌마을 출신 전주마트 대표이사 그에게 고향은 단순히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 아니다. 그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곳, 삶의 동력이 되는 곳, 그것이 바로 그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이다. 올해로 쉰여섯을 맞는 성만호씨의 고향은 동향면 대량리 창촌 마을이다. 그 당시 시골생활이 모두가 그러했듯이 그의 어린 시절 역시 하루하루가
김 영 수 씨 진안읍 군하리 출신 법무사김영수사무실 대표 재경진안군민회재무간사 재경진안읍향우회 총무 필자가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에게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 그것은 인간이 가장 바쁜 일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하는 자세를 지키고 있었던 그런 순간을 바라보는 때였음을 생각한다.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는 고등동물로서 만물의
임 진 홍 씨 정천면 갈용리 농산 출신 (주)씨.아이.제이(C.I.J)코리아 대표 아주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동문회 부회장 재경정천면향우회회원 "산업용 마킹기 전문업체인 (주)씨.아이.제이코리아는 전선 및 와이어, 철강, 자동차부품,PVC산업 등의 중공업분야는 물론 화장품, 식품, 의약품등의 경공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과 업종에서 생
이 환 선 씨 부귀면 수항리 출신 기아자동차 대전써비스센터 관리주임 (사)한국연예인협회 가수분과 회원 가수 지중해 오늘도 역시 아버지께 점심을 대접하려고 시간을 비웠다. 이날의 특별 메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송어회'로 정했다.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자주 내려오지 못 하는 게 죄송스러울 뿐이다. 현재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환선(56)씨
양 태 권 씨 진안읍 반월리 출신 비. 엠. 에스건설(주)감리담당 한국전통아카데미 풍수지리/주역/명리학 학술위원 홍익대미술대학 실내디자인과정 수료 필자가 5년 전 서울거주 진안 고향사람 취재를 진안신문으로부터 위촉받고 지금까지 100여명의 고향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면서의 그 목적과 의도는 우리 진안사람들이 그 전에도 해당 되겠지만 특히 1950년대에서 지금까
임 종 선 씨 정천면 갈용리 교동(校洞)마을 출신 동양한약방 대표/동양상회 대표 제기동칠우회 대표 재경정천면향우회 자문위원 음력 3월은 참으로 그 하루가 길고도 지루하다. 임종선씨가 군에서 제대하고 향리에서 2년여간 인삼농사로 세월을 낚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계절적으로는 아마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긔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오 정 숙 씨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元平地)마을 출신 한국예총전북지부 이사 한국가요강사협회전북지부 사무국장 (주)지성글로벌 전무이사 봄을 찾아 헤맬 수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닳을 집신조차 없어서 그냥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 짖던 세월이 그에겐 있었다. 그것은 생활의 이야기가 아니고 영혼의 이야기였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김 관 수 씨'전라도음식이야기' 대표전주 한정식발전협의회 회장마이산, 이른 새벽에 어둠이 채 걷히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곤 했다. 당시에 어둠을 밝혀주는 불빛은 호롱불이 유일했다.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른 아침밥을 먹곤 했었다. 그러나 밥을 먹어도 허기를 면할 수는 없었다. 또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병직씨상전면 구룡리 不老峙(불로티)마을 출신 (주)세필드 카운티 대표 강남구 논현2동113―13 진안사랑 골프모임 경기간사 쫓기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주시고 굳어있는 얼굴에는 소
손 옥 경씨마령면 덕천리 안방마을 출신동작소방서/대응관리과진압팀장(소방경)한국문인협회회원/공무원문인협회회원소방문학회회원/서울글사랑동인「그리운 고향언덕 가까이 시(詩)의 숲이 있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그 숲에서 놀아 온지도 오래 되었지만 이제야 무상한 세월 보듬어, 두려움 또는 아쉬움과 함께 이 글을 내 놓습니다. 소중한 만남과 그리움의 추억들을 드러내며 앞
한규년씨안천면 노성리 하보마을 출신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리움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속과 같아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면 찾아가 쉬는 안식처가 되곤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이 아늑하면서도 싸늘함이 함께 묻어 있는 추억의 공간으로 늘 의식 속에 따라다니기도 하다. 이처럼 고향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성 창 현씨동향면 대량리 하양지마을 출신기업은행 동부이촌동지점/지점장한양대 경영대학원 마케팅전공 36기 회장재경진안군민회보직(체육담당) 부회장 석가모니(釋迦牟尼) 불타(佛陀)께서 고대 인도의 도시 사위국(舍衛國:우타르프라데시州)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의 그 일화(逸話) 하나. 어느 날 붓다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대들이
이 형 규성수면 좌포리 봉좌마을 출신현 행정공제회 이사장행정공제회 이형규(55) 이사장의 고향은 성수면 좌포리 봉좌마을 이다. 좌포초등학교(현재 폐교) 6학년 무렵 전주 중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전주 신흥중과 해성고를 거쳐 성균관대를 졸업한 이형규 이사장은 행정고시 1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행정 관료로는 드물게 국무조정실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중앙무대에
김언수씨 주천면 주양리 출신 (주)디오스텍 대표이사/회장 (주)테이크시스템즈 대표이사/회장 (주)K.S.P. 대표이사/회장 재경주천면향우회 회원 재경주천초등47회 동창회 고문 재경진안군민회 자문위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마음에 와 닿는 이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그는 짧지 않은 타의에 의한 그 세월을 마치도 달통한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용담면에 있는 용담전원교회에서 만난 김학범(70) 장로. 그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1동에 살고 있다. 주식회사 용강금성 주유소 회장이며, 주식회사 바이오디젤 광주·전남 대리점 크린오일 대표이사이다. 또 광주에서 주유소 5곳을 운영하고 있는 건실한 사업가이다. 고향 용담을 떠난 김씨는 급진적으로 성공을 했다. 57년에 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규 환 씨진안읍 군하리 출신 (주) 건 보 대표이사 재경진안초 54회 동창회장 역임 재경전주고 50회 동창회장 역임 전북한방산업추진기획단 자문위원 전북애향운동본부 이사 재경진안군민회 부회장 『귀하는 농식품가공을 통하여 국가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철탑상업훈장』 2007년 12월31일 대한민
임병찬전북도민일보 사장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전북도민일보 임병찬(71) 사장의 고향은 진안읍 군하리이다. 초등학교 4학년(당시 국민학교)에 전주로 전학 갔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전주에서 보냈지만 진안은 여전히 그의 고향이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큰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전학 갔어요. 그 당시 전주국민학교로 전학하면서 불